당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안정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내 손으로 관장을 했다. 오전 10시 40분쯤에 수술실에 들어갔을까? 의사분들과 간호사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시고, 수면마취를 위한 프로포폴의 용량을 재는 모습을 보고, 내 팔을 번갈아 보면서 혈관을 짚고 주사를 놓는 모습을 쳐다봤다. 사실 그러는 와중에 수술실 천장의 조명이 너무 무서워서 울기도 했다. 같은 수술을 받는 다른 환자들은 기분이 어떨런지 모르겠다. 내가 봤을 땐 참 별난 환자다 싶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의식이 돌아왔다.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의사분의 목소리가 들리고, 희미하게 눈을 떠서 시계를 쳐다본다. 시간은 저녁 7시가 넘은 걸 확인하고,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는 걸 느끼면서 그대로 누워있었다. 물을 마시고 오렌지쥬스를 마시고. 그러다가 도로 잠들었던 것 같았다. 수술로 인한 빈혈 기운으로 아마 정신을 쉬이 못차렸나보다. 7시 40분쯤에 다시 깨어 의무진들의 도움을 받아 베드에서 휠체어로 몸을 옮겼다. 나는 소변줄과 소변주머니, 피주머니를 주렁주렁 차고 있었다. 수술용으로 입었던 일회용 속옷은 없어졌고, 그 자리에 굉장히 두꺼운 거즈와 붕대, 종이테이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수술은 끝이 났으나, 수술 이전 주에 활동량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음식도 많이 먹지 않았던 탓에 빈혈 기운이 강했다. 환부는 아주 아프거나 하진 않았지만 환부가 접히는 동작을 (쪼그리거나 다리를 접어 앉는 등) 전혀 할 수 없었다. 혼자서 앉거나 서는 게 너무 어려웠다. 환부가 아파서라기보단 피가 모자라서 그런 것 같았다. 수술중, 수술 후에도 안정실의 침대에 누워 계속해서 영양제와 철분제, 항생제 등을 투여했고 손가락에 맥박을 재는 기구가 연결되어 있어 규칙적으로 나의 맥박소리를 들어가면서 잠을 자고 깨고를 반복했다. 몇 차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병원에서 제공하거나 가족이 가져다 준 음식을 먹으려고 하다가 기운을 잃어서 다시 눕기도 하고, 이젠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녀보다가 빈혈 기운이 너무 심해 쓰러져보기도 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됐고, 몇 차례 영양제를 더 투여받다가 차를 타고 퇴원을 했다.
수술 후 +2일
집의 침대에서 스마트폰과 이어폰만 가지고 생활을 하다가, 자다가, 침대맡에 기대어 죽이나 두유같은 유동식들을 먹다가, 머리를 너무 감고 싶어서 가족들이 세숫대야 등을 이용해 어찌어찌 머리를 감겨주기도 했다. 여러가지 회복에 도움되는 요소들이 있었지만, 가족들이 그 어떤 것보다 컸던 것 같다. 나는 가족들의 마음을 무럭무럭 흡수해 점점 더 회복했다. 처음 한 번은 대변이 마려울 때 화장실을 어떻게 가야하는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완전히 '나오기 직전의 신호'가 오기 전까지는 화장실에 가지 않다가, 그 타이밍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면 된다는 걸 깨닫고 볼일을 볼 수 있게 됐다. 이 전까지는 스스로 대변을 보러 화장실에 갈 수도 없었을텐데, 다행히 그 때는 철분제 등을 다량 투여하고 있어서 인공적인 변비가 왔어서 고생하지 않았다. 이즈음부터 내가 원하는 만큼, 하루에 수 백보 정도를 걸을 정도의 체력이 돌아왔다. 여전히 오래 활동하면 힘들어서 도로 눕긴 했지만.
수술 후 +3일
오늘은 병원에 다시 내원해 며칠간의 퇴원생활동안 헐거워진 드레싱을 모두 제거하고 새로 붙였다. 이 때는 수면마취는 커녕 아무런 마취도 하지 않기 때문에 환부나 이런저런 곳이 상당히 아팠다. 그리고 개구리 자세를 취해야 해서 수치스럽기도 했고, 다리가 경련하기도 했다. (의료진들은 처치를 하느라 바빠서 내가 언제 다리를 편하게 해도 되는 지 말해주는 걸 잊곤 했다) 경과가 꽤 좋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고, 귀찮았던 피주머니를 제거했다. 다음에 내원할 때는 제일 귀찮고, 때때로 신호가 오거나 놓는 위치에 따라서 나를 조금 아프게 했던 소변줄과 주머니를 제거한다고 해주셨다.
수술 후 +4일
이젠 혼자서 머리도 감고, 서서책상을 만들어서 노트북을 거치하고 평일이니 재택근무도 하고 밥도 혼자서 먹는다. 소변은 소변줄이 해결하지만 화장실도 혼자 잘다니고, 소변줄이 이렇게 크고 거추장스럽지 않더라면 외출도 할 수 있겠다 싶은 정도다. (물론 아주 많이 걷진 못하겠지만)
이후
실밥같은 것들을 다 제거하고 난 이후로 수술 부위의 붓기가 어느정도 잦아들고 있다. 실밥을 제거하고 며칠동안은 붓기가 갑자기 심해지기도 하고 진물이 엄청 많이 나오기도 해서 앉으나 서나 조금씩 느껴지는 통증에 고생 좀 했지만 이젠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남들의 회복속도가 어느정도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딱 이정도. 얼른 더 회복해서 걷기만 하지 말고 뛰어도 다니고 운동도 많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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